브릿팝은 브리티쉬 음악을 대변해주는 포괄적인 용어도 맞지만 정확히는 일종의 음악 장르입니다.
브릿팝은 이것 저것 과거의 음악 장르들을 흡수한 여러 장르의 결과물로서, 결국에는 한 나라의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까지 알려지게 된 것 입니다. 우선, 위키피디아가 말하는 브릿팝의 정의를 한 번 보겠습니다.
브릿팝(Britpop)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대표되는 음악적 운동의 하나이자 록 음악의 장르이다.
원래 "브리티시 모던 록"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비틀즈 등의 음악을 차용한 복고적 분위기의 음악으로 영국에서 처음 탄생했으며, 기존의 락과 달리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멜로디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음악을 지칭한다.
본래 브릿팝은 1990년대에 영국에서 성행한 하나의 얼터너티브 록 계열의 일종의 움직임이었다. 1990년대 초반의 인디 음악에서 파생했으며 주로 60,70년대 영국 기타 팝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움직임은 미국에서 건너온 그런지 등의 당시 유행에 대항하며 발생하였다. 많은 밴드들은 애국적인 가사를 지었으며, 너바나 등 외국 밴드에 맞서 싸우는 듯이 영국만의 특색있는 음악이나 가사를 고집했다.
실제로 그런지에서부터 소프트 록, 하드코어까지 포함한 브릿팝 음악에서 음악적인 특색은 꼬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특별히 얼터너티브 록을 메인스트림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그 무렵 영국문화 전반에서 일어난 "Cool Britannica" 움직임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인 영국의 브릿팝 밴드로는 블러, 오아시스, 펄프, 버브등이 있다.

반영웅의 스타 이미지로 성공한 펄프(Pulp)
브릿팝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 전, 일래스티카(Elastica), 스매시(Smash), 에코벨리(Echobelly)등의 밴드들로 대표되는 '뉴 웨이브 오브 뉴 웨이브'라는 장르가 대두됐습니다. 1980년대 초 뉴 웨이브를 연장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 용어는 대중적으로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고 결국 단명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내 '브릿팝;이란 용어로 대체가 된 것이죠. 스웨이드(Suede)와 일래스티카 등은 각각 글램 록과 펑크 팝이라는 '1970년대 영국 팝'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당시의 음악은 복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 브릿팝은 복고라는 방향을 보다 명시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펑크와 뉴 웨이브, 모두를 포함함은 물론 1960년대 브리티시 팝까지 포괄하게 됩니다. 즉, 브릿팝이 1960년대 이후 영국의 음악적 전통을 계승한 기타 밴드의 음악'이라는 의미로 굳어져 갔습니다.
대드 록(Dad Rock)의 살아있는 화신, 폴 월러(Paul Weller)
'브릿팝 현상'을 대중적으로 빠르게 확산시킨 건, 오아시스와 블러, 펄프 등의 밴드입니다. (오아시스가 아무리 록앤롤 밴드라고 결국엔 브릿팝을 대하는 밴드입니다. 그것은 브릿팝의 용어를 설명함에 앞서 이들을 절대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도 이에 가세하여 블러와 오아시스의 과도한 신경전을 조장하는데 큰 힘을 보탰습니다. 이들이 브릿팝 현상의 정점을 찍으며 새로운 장르의 출범을 알림과 동시에 이런 복고 분위기에서 가장 부각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폴 웰러(Paul Weller)입니다.
그는 마치 닐 영이 그런지의 대부로 대우받는 것과 비슷하게 브릿팝의 대부라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브릿팝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0년대 말, 잼 시절부터 1980년대 스타일 카운슬을 거쳐 솔로 활동까지 그는 '세대의 목소리', '노동 계급의 목소리'라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브릿팝은 노동 계급의 대변음악으로서, '영국의 소리'로까지 그 범위가 확산되었습니다. 1990년대, 닐 영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노엘 겔러거또한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국보급 존재로 부각됨도 '브릿팝의 대변인'이라는 명칭을 얻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인기는 비틀즈와 맞먹을 정도로 절정을 이뤘다고 하네요.

브릿팝 패션과 결합한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자미로콰이;Jamiroquai)
** 브릿팝이 지닌 양날의 검: 상업성? Or 음악성?
브릿팝은 '복고를 통한 활기'라는 음악적 운동만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포츠 웨어와 결합되어 '브릿팝 패션 스타일'이 영국내에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흰색 재킷과 아디다스 운동복 등이 가져다 주는 댄디하고 쿨한 스타일은 브릿팝이라는 요소와 결합하여 단숨에 거리의 패션을 장악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 혹은 운동할 때 입던 트레이닝복이 브릿팝을 대표하는 패션 용품이 된 것이죠.
여기서 이상한 점은 브릿팝이 음악이나 스타일 모두에서 과거의 유산과 심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브릿팝이 누리는 막대한 파급력을 이용한 미디어와 기업체의 상업적 전략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 이런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미국적인 것에 대항하려는 영국인들의 브릿팝 전쟁이다'라며 평론가들은 이에 극단적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들은 영국의 하위 문화가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된 반면, 브릿팝과 관련된 대중 문화는 미디어에 의해 '위로부터'이식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블러와 오아시스의 대결구도가 딱 그런 셈이죠.)
어쨌든 브릿팝은 복고적인 것이면 무엇이든 무차별적으로 포용했습니다. 1960년대의 비틀 그룹(비틀즈, 홀리스)은 물론 글램 록, 펑크 록 등의 음악들이 '전통적'이며 '영국적'이라는 특징으로 브릿팝에 죄다 포괄됐습니다. 뮤지션의 태도 역시 자기 과시적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이고 복고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엘이 특히 그러하죠.) 즉, 브릿팝은 3분 짜리 팝 싱글과 스타의 매력에 충실하는 미디어의 요구에 딱 부합되는 성격의 장르인 셈입니다.
까칠한 오아시스와는 대비적으로 상큼하고 댄디함의 이미지를 내세운 블러(Blur)
** 브릿팝의 음악적 성격: 기타와 곡조
1980년대에는 팝적인 선율이 주는 친근함을 통한 쾌락이 인디 씬의 주된 미학이었습니다. 인디 팝에서는 록의 경직된 사운드보다 팝의 순발력과 친근한 사운드가 가장 큰 매력이죠. 하지만 반면에 브릿팝에서 보이는 팝적 감성은 스타가 보이는 친근한 외향과 더불어 소박하고 정감 어린 1980년대 인디의 음악이 겹쳐져 '넓고 추상적인' 공유감으로 대표됩니다.
뿐만 아니라, 브릿팝에는 스타덤과 뛰어난 선율감을 앞세워 고루한 리듬을 고루하지 않게 들리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록큰롤의 낡은 리듬을 젊은 감성으로 표현한 것만으로도 꽤 이례적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음악은 1960년대 브리티시 사운드와 전통 포크 송이었습니다. 특히 포크 송의 영향은 제임스, 포그스, 스미스, 스톤 로지스 등의 음악에서 쉽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브릿팝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고전적인 멜로디보다 1960년대에 비틀즈,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 등에 의해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걸러진 팝적 멜로디를 추구했습니다. 이 외에도 음색이나 가사면에서도 새로운 사운드 대신 고전적 음색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맨체스터 사운드와 드림팝 운동을 통해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는 가급적 배제되고 대신 산뜻하고 정갈한 사운드가 채워졌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오아시스, 그리고 브릿팝의 대표 아이콘
** 2000년대, 브릿팝의 새로운 행보: 복고 + 테크놀로지
1996년 후반에 이르러 브릿팝의 과열이 '피곤한 소모전'이라는 대중의 반응이 나타나면서, 브릿팝의 보급또한 그 열기가 식어갔습니다. 브릿팝이 '영국 음악 산업이 영미권에서의 트렌드 이동을 시도하기 위해 고안해 낸 마케팅 장치'였다고 고백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그 후 브릿팝은 아메리칸 록에게 트렌드의 자리를 내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브릿팝의 활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영국 음악으로 일컬어지는 브릿팝은 2000년대 이후에도 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팝적 선율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기계 사운드의 실험이 만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합성은 과거의 '복고'방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엘 갤러거가 케미컬 브라더스의 "Setting Sun", "Let Forever Be"에 피쳐링을 한 것도 큰 반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에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브릿팝은 죽었다'고 발언했습니다. 하지만 브릿팝은 어느 음악과 결합하든 여전히 브릿팝다운 경쾌함과 발랄함, 우울함과 애뜻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